상명대박물관 유물과 만나다 (100) 유럽자기
- 작성자 박진희
- 작성일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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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자기
대항해시대에 유럽에 전해진 동아시아의 ‘자기’는 유럽 왕족과 귀족층 사이에서 ‘백색의 금’이라 불리며 관심을 받게 되었다. 경질의 백색 자기를 만드는 비밀을 풀기 위해 유럽 왕실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고, 결국은 독일 마이센에서 유럽 도자기의 역사가 그 문을 열게 되었다.
이후, 독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영국에서도 경질 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뱅센 공장이 세브르로 시설이 이전되면서, 1774년부터는 경질 자기를 생산하는 유럽 최고의 자기 공장으로 부상하였다. 1760년부터 크림웨어 도기 생산을 시작한 영국의 웨지우드 회사는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1775년에 개발한 재스퍼 웨어로 다시 한 번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00년부터 유럽의 자기 공장들은 고화도 생산라인을 완전히 바꾸어 클래식한 형태의 식기와 화병종류 등을 생산하였으며, 비엔나, 마이센, 베를린 등지의 자기 공장에서도 세브르에서 개발한 회화적 양식을 따랐다. 1850년 이후 도자 산업에 기술력이 증진되면서,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장식 미술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아르누보 양식이 출현하여 유럽의 근대 양식 자기의 수준을 보여 주면서 명실 공히 유럽자기의 세계 수준으로의 도약을 보여주었다.
독일 : 마이센
작센의 제후이며 폴란드의 왕인 아우구스투스 2세의 원조로 자기를 연구해오던 뵈트거는 1709년 적갈색의 경질 도자기 제작에 성공하였으며, 때마침 작센지방에서 발견된 고령토를 이용하여 경질의 백색 자기를 유럽 최초로 생산하였다. 마이센 자기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사람은 1720년에 총감독으로 초빙된 헤롤트와 1731년에 조각가 겸 조형작가로 초빙된 켄들러다. 헤롤트는 마이센만의 문양을 개발하였으며, 켄들러는 도자기의 형태와 조각적인 발전을 촉진하여 18세기 중반까지 마이센 자기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영국 : 로열 크라운 더비(Royal Crown Derby), 로열 우스터(Royal Worcester)
1745년, 첼시에 영국 최초의 연질자기 공장이 세워진 이래로 로열 크라운 더비, 로열 우스터 등 수많은 자기 공장이 등장하였다. 영국의 자기 공장은 왕실 후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개인 기업체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그 생산품의 질적인 측면보다는 자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맞추어 저렴하게 만들어졌다.
더비와 우스터는 이에 발맞추어 가격 저렴한 일상생활용품을 제작하는 데에 주력하다가 18세기 말 중국과 프랑스로부터 값 싼 자기가 수입되어 경쟁력이 따라가지 못하자, 마지막 마무리에 금으로 장식하는 품질 좋은 고급 도자기로 제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덴마크 :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1755년 왕가의 지원 아래 설립된 코펜하겐은 초기에는 마이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민간기업으로 바뀌며 왕으로부터 로열 칭호를 얻어 로열 코펜하겐으로 명명되었다. 덴마크 왕이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선물하기 위해 코펜하겐에 주문하여 제작된 야생식물이 수작업으로 그려진 플로라 다니카(Flor Danica)시리즈는 덴마크 도자기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코펜하겐의 특징은 코발트를 화려하게 사용하는 것이며, 하얀 바탕에 푸른빛의 꽃무늬가 그려진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는 로열 코펜하겐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한다.
프랑스 : 세브르(Sèvres)
1740년 프랑스의 뱅센(Vincennes)에 문을 연 도자기 공장은 독일의 마이센만큼 뛰어난 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루이 15세의 지원 아래 공장을 세브르로 옮겨 본격적인 경질 자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도기에 주석을 함유한 연질도기 파이앙스는 프랑스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어온 도자기였으나 리모주 부근에서 고령토층을 발견하면서 백색 자기 개발이 급진전되었다. 세부르 특유의 화려함은 로코코양식이 정수이기도 하다. 세브르는 바탕색으로 특징을 나타냈는데, 일명 ‘세브르 청색’으로 불리는 청금색의 독자적인 색채가 뛰어나다. 그 외 프랑스 경질 도자기의 대표 산지는 리모제를 들 수 있다. 왕실이 독점하던 칙령이 완화된 1766년부터 여러 다른 지역에 도자기 공장들이 세워지게 되었고 이들은 질적인 면에서 세브르의 도자기와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고령토가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리모제(Limoges)에서 발견되면서 이곳에 많은 공장이 세워졌으며,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식기들을 공급하기에 이르렀다.